윤만식, 그는 오늘도 탈 만드는 일에 빠져 있다.

윤만식, 그는 오늘도 탈 만드는 일에 빠져 있다. 마당극의 탈은 단순하지 않다. 작품의 전체적인 틀과 배역을 상상해서 만든다. 탈의 표정은 배역을 대변한다. 재벌과 권력자, 서민(민중)들의 표정이 각기 다르다.

“부자들은 전체적으로 풍요로운 이미지죠. 중간계급들은 물론 다르죠. 눈초리는 강하지만 부드러운 이미지를 갖고 있어요.”

욕심 있는 사람은 입이 크고, 욕심 없는 사람은 입이 작다. 그는 만들어진 탈을 쓰고 무대에 오른 배우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한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탈이라도 배우의 성격에 맞지 않으면 버려야 한다.

“공연을 보고 있으면 탈들과 탈을 쓴 배우들이 내 자식 같아요. 뿌듯하기도 하지만 탈과 배우 성격이 맞지 않을 경우도 적지 않아요. 배우들이 대본에 있는 설정보다 추임새나 언어전달을 강하게 할 때 그래요. 만들어진 탈과 배우가 한 몸이 아니게 돼요. 관중들의 눈을 보면 알 수 있지요.” 극중 배우의 행동 방향이 커지면 말도 많이 하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다. 연기를 생각하면서 배역에 맞게 특징을 살려서 또 다시 탈을 만든다.

그 시절 광대들의 모습은 세상 밖으로 자주 나왔다

광주에서 30년을 넘게 문화 활동가로 살았던 그가 어느 순간 삶의 거처를 장성으로 옮겼다.

2년 전 <우리들의 얼굴> 이라는 주제로 광주시 궁동 무돌 아트갤러리에서 탈 가면 전시회가 열렸던 적이 있다. 1970년대 후반 <봉산탈춤><함평 고구마><돼지풀이>등 탈춤판과 마당극 판에 쓰였던 탈 가면들이었다. 특히 봉산탈춤 때 비리와 부정의 상징이 됐던 탈들의 크기와 형태, 느낌들은 가지각색이다. 한국 축구 응원단 붉은 악마의 상징 ‘치우천황’, 창작 마당극 판에 나온 재벌, 귀족, 농민, 노동자 탈. 5·18 민주화운동 때 산화한 영령을 표현한 ‘5월의 전사’ 등도 전시 되었다.

30년 전 그 시절엔 공연을 위한 탈을 어디서도 빌려주지 않았다. 스스로 만들어야 했다. 손때가 묻은 추억의 탈들을 모으면서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73년 전남대 농대 축산과에 입학했지요. 군 복무를 마치고 77년 봉산탈춤을 배운 후 전남대와 조선대에 탈춤 반을 만들었어요. 탈춤 반을 만들기까지 무수히 많은 일들이 있었고, 이끌면서도 가슴 아픈 많은 사건들이 계속 일어났지요.”

그가 살아 걸어온 시대는 만만치 않았다. 77년 광주에 가면극회가 만들어졌다. 그 시절 서울출신 탈춤 반 사람들이 문화운동과 노동운동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광주에 탈춤 반을 만들자는 결의를 낸다. 그 당시는 소설가 황석영이 해남에서 <장길산>을 쓰고 있었을 때다. 그렇게 <전남대 민속문화 연구회>가 만들어졌다. 이후 석 달 만에 6·29 혁명이 일어났다. 나중에 대표까지 맡았던 김선출과 김윤기가 참여했다. 그들 모두 수배자가 되면서 연구회는 깨지고, 79년에 다시 연구회가 결성된다. 그 해에 윤만식은 회장을 맡았다. 그가 조대 탈춤 반을 만들면서 광대들은 세상 밖으로 자주 나왔다.

1년 뒤 5·18이 일어났다. 그와 함께 지냈던 문화운동, 노동운동가들은 5·18의 복판으로 걸어 들어갔다.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잡혀갔다. 그러나 문화운동의 맥은 끊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82년에 놀이패 ‘신명’을 만들었다. 놀이패 신명은 지나간 시간 고민에 대한 현재적 결과물을 끊임없이 내뱉어야 했다. 그것은 숙명이었고, 신명의 존재 이유였다.

저 푸른 초원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광주에서 30년을 넘게 문화 활동가로 살았던 그가 어느 순간 삶의 거처를 장성으로 옮겼다. 장성은 그와 인연이 깊은 곳이었다. 극단에서 동학농민혁명 황룡전투를 재현한 공연을 했던 적이 있다. 무대는 황룡면 현장이었다. 장성 홍길동축제의 총 연출도 여러 번 맡았다.

“인생의 칠 할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나머지 3할은 마음의 짐들은 내려놓고 싶었어요. 젊은 시절 문화운동 한답시고 작품제작에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밀어 넣었어요. 술 먹는 데도 많이 썼어요. 집에 돈을 벌어다준 기억이 없어요. 와이프 고생 많이 시켰죠.”

사업도 해봤지만 세상은 만만하지 않았다. 사기도 당했다. 노후를 생각하니 복잡한 곳이 싫기도 했다. 그러나 생각뿐이었다. 삶의 이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의 몸과 마음은 여전히 거기 머물러 있는 것이다.

욕심 있는 사람은 입이 크고, 욕심 없는 사람은 입이 작다.

“3년 전인가, 농어촌 뉴타운 ‘장성드림빌’ 공고를 우연히 보게 됐어요. 나이 들면 몸이 시골 쪽으로 기울잖아요. 전공이었던 축산을 한 번 해 볼까 싶은 마음도 들더라고요. 여름에는 오리를 키워 볼까 해서 축사 부지를 구하러 다녔어요. 하지만 운영하기가 힘든 조건들이라 어쩔 수 없이 포기했죠.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이것저것 따져 보니 문화운동이 제게는 딱입디다. 농사만 짓고 산다는 것은 제게는 무모한 일입니다.”

그는 아직도 광주에서 열리는 문화예술 판에 늘 나타난다. 다만 너무 오래 달렸다. 이제는 쉬엄쉬엄 가고 싶다. 돌아보면 시간 살아온 문화운동의 시간은 고됐다. 그러나 후회는 없다. 지금 그는 무엇이든 견딜 수 있는 시간에 닿아 있다. 그는 아직도 걷는다.

올해, 그의 나이 60이다. 그의 회갑을 축하해주기 위해 79학번 후배들이 그의 집을 찾을 예정이다. 12월19일 대선 때 모이기로 했다. 닭도 잡고 춤추고 노래도 부를 요량이다. 사는 거 별 거 없고, 그런 게 행복이다.

대동문화 73호 [2012 11.12월호]

한경숙 기자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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