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길 궁시인생을 산 김기 선생에게 궁도 계훈의 하나인 불원승자(不怨勝者-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의 가르침이 어울리도록 하는 일, 그것이 전통을 제대 로 이해하고 가치를 인정하는 일일 것이다.
 

깃털 하나도 정성스레 다듬는 김기 궁시장

궁시장 박상준 선생과의 인연으로

활과 화살을 제작하는 공인은 어느 시대에나 전업화(專業化)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의 각종 공장의 기록과 기술자 명단에서 그들을 유독 ‘궁인(弓人)’, ‘시인(矢人)’이라 한 것을 보면 각별히 차등을 두어 예우했던 것으로 보인다.

전남 광양의 김기 선생은 외길보기로 화살과의 인연을 쌓아온 궁인이다. 14세 때 개성화살의 궁시장으로 명성을 날리던 박상준(중요무형문화재) 선생을 만나 화살제작에 관심을 갖고 기술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박상준 선생이 인천으로 떠나자 남도의 궁도인들은 김기 선생에게 화살제작을 부탁했다. 하지만 잠깐 어깨너머로 배운 기술로는 제대로 된 화살이 만들어질리 없었다.

이후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섬대(해양죽)를 구하러 여수로 내려온 조명재(중요무형문화재47호) 궁시장을 다시 만나게 된다. 그때 비로소 본격적인 화살의 제작기술을 연마하기 시작한다. 그에게는 구원이 된 셈이다.

2년여에 걸쳐 기술을 연마한 그는 비로소 독립하여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된다. 기술을 익혔다고는 하나 궁핍하기만 했던 그는 한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전국을 돌며 화살 만드는 일을 했다. 그렇게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1974년 전남 광양에 정착하면서 안정을 찾게 되고 각종 공예전에 입상하면서 점차 그 이름이 알려지게 된다.

궁시장 김기 선생은 전통방식의 제작을 고집한다

우리 고유의 전통 활과 화살의 매력

우리의 전통적인 활은 쇠뿔［牛角］과 쇠심 같은 유별난 재료를 사용한 각궁(角弓)이라는 점에 특징이 있다. 활짱(활의 몸)의 손잡이 부분(줌통)과 양쪽 끝(정탈목 고잣잎)에는 참나무와 뽕나무를 각각 대지만, 강력한 탄력을 유지하는 오금 부위에는 죽심(竹心)을 넣고 그 안팎에다 쇠뿔과 쇠심줄을 부레풀로 접착시킴으로써 탄성(彈性)의 강도를 한껏 높인다.

이때 수우각(水牛角 : 무소뿔)을 깎아 댄 것을 흑각궁(黑角弓)이라 하고, 또 한우각(韓牛角)은 백각궁(白角弓)이 된다. 백각으로는 큰 활을 만들지 못하는 결점이 있어 흑각궁을 높이 친다. 이러한 각궁은 목궁(木弓)이나 죽궁(竹弓)에는 비할 수 없이 화살이 먼 거리에 미치는 강궁(强弓)에 속한다.

여기에 그가 만든 화살은 정교하고 섬세하며 강인하다.

깃털은 수꿩의 날개쭉지 깃을 사용한다

화살은 시누대［箭竹］로 만들며 활과 마찬가지로 세심한 공정과 갖가지 합재(合材)로 이루어진다. 시누대, 꿩깃, 화살촉, 복숭아나무로 만드는 오늬 등을 소재로 하여 만들어지는 전통제작 방식의 궁시는 제작 과정도 어려울 뿐 아니라 보관이나 관리하기도 힘들다. 제작과정에 드는 재료도 구하기가 힘들다.

화살은 예로부터 순수한 우리 고유어로 ‘살’이라 하며 한자어로는 전(箭), 시(矢), 족(簇)이라 한다. 전은 중국 고대 주나라의 동쪽에서, 시는 강희에서, 족은 함곡관에서 사용되었지만 오늘날에는 통용되고 있다.

화살을 만드는 작업 도구로는 화로, 톱, 졸대, 칼 등 30여종에 이르는데 저울, 실톱, 줄만 공장 제품을 사용하고 나머지는 대장간에서 맞춰 쓴다.

화살의 주 재료인 시누대는 2년생 가년죽이어야 한다. 1년생 금죽은 너무 가볍고 3년생 구죽은 무게가 넘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가년죽을 모두 쓰는 것은 아니다. 깃과 사촉 사이에 3마디가 박힌 5절죽 이어야 한다.

이러한 대나무는 주로 섬에 많이 있어 10여일씩 섬을 돌아다니며 재료를 구한다. 그것도 쓸만한 것은 이삼백 개에 불과하다.

깃털 역시 장끼(수꿩)의 날개쭉지를 사용한다. 아침이슬을 맞힌 뒤 새벽에 말려 잘 펴지면 이를 네 치 닷 푼 길이로 오려낸다. 이 깃털은 화살의 방향을 조절해 주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오늬는 활시위를 넣을 수 있도록 홈통이 파인 것을 말한다. 속이 비어있지 않은 단단한 복숭아나무나 싸리나무를 한 치 여섯 푼 길이로 깍아서 만든다.

완성된 화살은 마무리까지 무려 130여 차례의 손이 가야 비로소 마무리 된다.

궁도 계훈의 하나인 불원승자(不怨勝者)의 가르침

화살 하나하나에 쏟는 정성이 그를 궁시장으로 만들었다

전통제작 방식의 궁시를 만들어 내기까지 인고의 세월을 거치면서 끝까지 그는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외길 궁시인생을 산 김기 선생에게 궁도 계훈의 하나인 불원승자(不怨勝者-이긴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의 가르침이 어울리도록 하는 일, 그것이 전통을 제대로 이해하고 가치를 인정하는 일일 것이다.

그는 ‘광양 궁시제작소’를 만들어 후계자 양성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문하생을 두어 광양 궁시장 전수자로 지정 받도록 하고 다수의 제자들을 지도하고 있다. 또한 저렴한 가격대의 장식용 민예품도 만든다.

김기 선생은 지금껏 지켜온 장인정신의 보람으로 화살제작에 힘쓰며 전통공예의 전승발전에 남은 생을 바치려 한다. 그것은 민족적 정기와 혼을 지켜가는 일일 것이다.

냉기가 흐르는 작업실에서 곧고 매끄러운 화살을 매만지고 있는 김기 선생, 그의 전통 보전의 사명감이 오래도록 우리 곁에 남기를 희망한다.

[대동문화 92호. 2016년 1,2월호]

이동호 기자  ddmhok@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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