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주시와 관련 연구기관들의 문화관련 연구 용역보고서 가운데 일부이다. 수백억을 들여 제출한 이들 보고서 가운데 광주광역시의 비전을 제대로 제시했거나 공통된 비전을 제시한 보고서가 없다는 것은 광주시의 정책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문화예술의 일상화, 행복한 문화공동체 광주’, ‘아시아 실감콘텐츠 중심도시’, ‘휴먼미디어시티 광주’

2015년에 광주시가 3억여원 가까이 들여 3개의 외부 전문기관에 발주한 문화관련 중장기계획을 수립하는 용역보고서에서 제시한 각각의 비전이다. <광주시 문화예술중장기종합계획>, <광주시 문화콘텐츠산업 진흥을 위한 중장기종합계획>, <광주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마스터플랜>이다.

여기에 덧붙여 같은 해 보고서로 제출된 광주발전연구원의 <지역문화진흥시행계획>의 비전은 ‘문화로 행복한 지역창조’였다.

이들 중장기계획 가운데 몇 개나 제대로 반영할 지는 모른다. 중요한 것은 광주광역시는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사업을 벌이고 있는 현장인데도 문화적 비전에 대한 공통점을 찾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비전은 방향성이다. 도시발전의 큰 그림을 그리기 위한 방향성에 해당하는 비전이 같은 지자체에서 발주했고 같은 해에 만들어졌지만 방향이 모두 엇갈려 있다.

1백여 보고서 시장 입맛 따라 달라져

이는 연구기관들이 자신들의 생각에 따라 비전을 만들기 때문이다. 광주시도 여러차례 중간보고서를 검토하고 전문 자문위원들이 자문회의를 가졌지만 같은 해에 제출된 문화관련 중장기계획에서 이를 통합하는 비전은 제시하지 못했다.

각각의 자문위원회에서 별도로 논의하다보니 다른 보고서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했거나 광주시가 다른 보고서에 대해 사전정보를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더욱이 일부 연구기관의 비전은 사실상 형식에 가까웠다고 평가할 수 있다. <광주시 문화예술진흥 중장기 종합계획> 2차 보고(2015.1.)와 3차 보고(2015.4.)에서의 비전이 완전히 달라졌다. 그러나 비전에 맞춰 제시해야 할 핵심가치나 정책목표는 달라진 게 없다.

결국 이러한 용역보고서에서 제시하는 비전은 ‘말장난’에 불과할 뿐이라고 지적된다. 비전이 크게 바뀌면 당연히 가치나 목표도 바뀌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태를 빚게 만든 원인은 광주시의 비전이 없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는 1998년부터 2015년까지 광주시 행정자료실에 있는 보고서 가운데 우선 검토한 1백여개에도 같은 비전은 없었다. 수백억을 들여 만든 보고서가 시의 비전 수립에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장인 광주에서 제대로 된 비전이 없기 문화도시 사업들이 우왕좌왕한다는 지적이 높다.

광주시의 비전은 무엇일까. 광주시의 살림살이를 알 수 있는 누리집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아무래도 시 누리집에는 시의 이념이나 정책방향성 등의 자료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민선6기 시정 비전 및 방향에서의 시정비전은 ‘더불어 사는 광주, 더불어 행복한 시민’이었다. 이 비전이 광주시의 비전일 수도 있지만 이는 시의 비전이기보다는 시장의 시 행정을 제시하는 비전이다. 시장의 임기 중에만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광주시청의 누리집에 시의 기본심벌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광주광역시의 기본심벌은 빛과 생명의 원천인 태양과 인간 형상을 기본으로 한다. 이는 세계, 미래로 열린 빛고을 광주의 열망과 진취적 기상을 표현한 것으로 전체 둥근 원은 태양을, 자유롭게 뻗어나가는 경쾌한 곡선은 인간을 의미한다.”

광주시의 CI 이념선언문에는 이같은 의미를 담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광주광역시는 새천년 화해와 상생의 시대를 맞이하여, 세계를 밝히는 빛고을 광주의 단합과 발전을 위한 정체성을 확립하여 미래의 비전을 천명코자, 도시의 이념을 정의와 평화정신을 바탕으로 ‘환경, 첨단과학, 문화’의 혁신적 진흥을 가져올 ‘세계의 빛, 생명의 터’로 제정한다. ‘세계의 빛, 생명의 터’는 천, 지, 인 철학을 안고 사는 광주인이 세계 속에서 찬연한 빛을 발하고 경쟁력 있는 진취적 도시로 우뚝 서고자 함을 개념적으로 표현한 문장이다.”

시민 동력 한데 모으는 논의구조 절실

여기서 드러난 비전의 핵심 단어는 빛과 생명이다. 이는 시장의 임기와 관계없이 시의 정신이며 정체성을 드러내는 비전의 핵심어이라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의 모든 용역보고서나 시의 자체 계획서에도 빛과 생명은 찾기가 힘들었다. 2003년 이후 보고서의 비전이나 목표에 자주 등장한 단어는 ‘민주 인권 평화’였고 ‘첨단산업도시, 문화중심도시, 생태문화도시’가 주로 나타났다.

광주를 상징하는 예술의 거리에서는 매년 다양한 축제가 열리고 활성화대책을 논의하고 있지만 반짝행사에 치우치고 있다는 평가다.

광주발전의 방향성이라 할 수 있는 비전은 광주시가 시민들의 동력을 한데 모을 수 있는 중차대한 과제이다. 국지적인 이야기들이 일부 있었을 뿐 100년 앞을 내다보는 장기적 관점의 시각이나 논의구조는 별로 없었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캠페인성 구호가 달라지고 정책도 큰 변화를 겪는다. 시장의 말 한 마디에 이전 시장이 추진했던 정책을 없었던 일로 해버린다. 비슷한 정책을 이름만 바꿔 다시 추진한다. 시민들의 광주시의 일관성 없는 정책에 대해 혼란을 겪는다.

몇 사람만의 연구로 결론을 맺는 용역보고서는 광주시의 비전을 수립하는 데 한계가 있다. 우선해야 할 것이 광주시민의 대규모 조사를 통한 광주정신, 광주정체성의 비전 수립이 요구된다. 이렇게 만든 비전이 광주시민의 자긍심이 되어야 한다.

광주시의, 광주시장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인서 기자  chkorea9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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