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친절한 인생의 안내자다. 성장과 성숙의 길로 이끈다.

근래에 많은 예술분야가 치유, 힐링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소개되고 소비되고 있다. 문학을 비롯해 미술, 음악, 연극, 영화, 무용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예술 장르를 아우르는 듯하다. 그 중에서도 문학은 문학 치료, 이야기 치료, 독서 치료, 글쓰기 치료, 시 치료 등의 이름으로 그 성격을 조금씩 달리하면서 힐링과 적극적으로 조우하고 있다.

도서관이나 복지관 등에서 프로그램이 실행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연구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며 관련 도서도 계속해서 출판되고 있다. 대학 내에 관련 전공이나 교과가 만들어지기도 하였다. 인간의 마음과 정신의 치유는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의 영역이 아니었던가? 문학은 왜, 어떻게 치유와 만날 수 있는 것일까?

문학은 본능이다

문학은 희망이고 성찰이고 치유다. 문학 치료 프로그램 모습

문학이 본능이라고 하면 반기를 들고 싶은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난 일 년에 소설책 한 권도 안본다구!” “글이라곤 초등학교 때 방학숙제로 쓴 일기가 전부야!”라고 하거나 심지어 국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조차 “글 쓰는 게 제일 두렵다.”라고 얘기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니 말이다. 많은 이들이 활자화된 이야기를 읽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것을 힘들어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문학을 지나치게 문자언어와 관련지어서 이해하기 때문은 아닐까?

조금만 시각을 바꿔보자. 드라마 한두 편 꼬박꼬박 챙겨본 적, 실컷 울고 싶은 맘에 슬픈 영화 한 편 찾아본 적, 모든 사랑 노래를 내 얘기처럼 느꼈던 적, 그런 적 있지 않은가? 살아가면서 듣고 보고 겪게 되는 수많은 소설 같은 이야기들을 우리는 누군가와 만나서, 혹은 몇 시간씩 전화기를 붙들고 전하고, 전해 듣고 있지 않은가? 이 가운데 언어 사용에 좀 더 민감하고 능숙한 누군가는 작가가 되고 이들이 쓴,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일관되고 완성도 높은 글을 우리는 엄밀한 의미의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이 지점에서 ‘문학’과 ‘이야기’라는 용어를 함께 사용하고자 한다. 두 단어의 의미가 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문학이 장르와 형식 달리하더라도 결국 사람과 삶에 관한 이야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렵게만 여겨지는 있는 문학이 실은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사람과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본능’에서 출발한 것인지 모른다.

서울 시내 모 기관에서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문학치료 프로그램이 이뤄지는 모습이다.

문학을 통해 우리가 얻는 것은?

식욕은 우리를 배부르게 하고 수면욕은 휴식을 통해 건강을 유지하도록 하며 성욕은 자손을 얻게 한다. 그렇다면 문학, 곧 사람과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욕구는 무엇 때문인가?

첫 번째, 예방주사! 불안을 잠재우고 면역력을 기른다.

그것은 아마도 삶을 견뎌내고 살아갈 힘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배부르게 먹고 실컷 자고 사랑을 나눈다고 해도 삶이 그리 만만치 않다. 태어난 인간은 누구나 죽음에 이르기까지 넘어서야할 발달과업과 인생살이의 문제들이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전에 통제할 수 없는 것이어서 인간은 불안하다. 그리고 그 문제의 한 가운데에 선 인간은 고통스럽기 그지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야기를 한다. 인간이 겪어내야 할 수많은 어려움에 대해서, 문제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통해 다가올 일들에 대한 예방주사를 맞고 그러한 문제가 나만 겪는 것이 아님을 알고 안도하며 세상과 소통하고 삶의 지혜를 얻는다. 사람과 삶에 대한 이야기, 문학은 사람들이 미래를 준비하고 인생의 고비를 넘으며 살아가도록 하는 힘이다.

두 번째, 지도! 대안과 희망을 발견한다.

하나의 길을 가다보면 수많은 갈림길을 마주하게 되듯이 삶 또한 마찬가지이다. 살아가면서 하게 되는 선택들은 내가 어떤 삶을 추구하는가, 어떻게 삶을 살고자 하는가에 따라 달라지는데 대게는 그 자신의 경험의 폭이나 인식의 한계로 인해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하지 못한다. 문학은 수많은 삶이 전개되어 끝을 맺기까지, 가보지 않은 삶의 면면을 우리 앞에 펼쳐 보여주고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문학은 다양한 삶의 모습 속에서 나의 위치를 확인시켜주고 나와 다른 삶, 다른 길을 가는 타인을 발견하게 한다. 낯선 길을 갈 때 지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두려움이 덜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속에서도 어딘가에 길이 있음을 믿고 갈 수 있다. 막다른 길에서 절망하는 이에게 다양한 갈림길의 대안이 존재함을 알게 한다. 문학은 희망이고 삶의 지도이다.

세 번째, 문학은 안내자다. 성장과 성숙의 길로 이끈다.

굳이 문학과 힐링을 연관 지으려는 요즘의 노력이 있기 아주 오래 전부터 문학은 그러한 영역을 꾸준히 담당해왔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와 노래들이 그러한 예일 것이다. 요즘 흔히 전래동화라고 불리는 설화와 민요들은 언제인지도 알 수 없는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전해져 왔으며 소설, 영화, 드라마, 광고, 가요의 모티프가 되어 계속해서 재생산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쾌락을 넘어서서 삶에 기여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옛 사람들이 ‘부모에게 의존하는 어린아이로 남아선 안 된다’를 알게 하기 위해 윤리 덕목만 가르친 것이 아니다. 반복해서 <해와 달이 된 오누이>를 들려주며 스스로 지혜를 발휘하여 호랑이 엄마로부터 벗어나는 오누이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삶의 태도를 내재화하는데 오히려 이야기가 더 강력한 효과가 있음을 옛사람들은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좋은 이야기, 좋은 문학은 사람의 내면 깊숙이 자리 잡고 성장과 성숙으로 삶을 안내한다.

치유는 문학 본연의 역할이다. 문학 치료 이후 결과물 전시

표출하고 공감하면서 스스로 치유한다

네 번째, 치료제! 표출하고 공감하고 소통한다.

과거 시집살이라는 불합리한 현실을 여성들이 견뎌낼 수 있었던 것은 민요를 부르며 상처를 달래고 함께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암울한 현실을 견디기 위해 함께 했던 저항시와 민중가요, 사랑의 고통과 외로움 등 내면의 어려움을 토로한 시와 노래들 역시 그러하다.

앞서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와 같이 건강한 삶의 태도를 가지도록 유도하는 것이 예방적 차원의 힐링이라면, 노래와 시의 경우에서처럼 이미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여있는 이들에게 표현과 공감 및 소통의 장이 되어주고 대안을 모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치유적 차원의 힐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힐링은 문학이 가지는 부가적인 기능이 아니라 문학 본연의 역할이다. 문학이 가지는 힐링의 힘은 근래에 찾아낸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래 전부터 활용되어 온 것이다. 다만, 요즘처럼 힐링이 요구되는 시대에 이르러 문학이 가지는 힐링의 힘을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마련하고 적극적으로 적용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있을 뿐이다.

문학으로 힐링하는 것을 주저할 이유가 없다. 대중가요를 흥얼거리며, 거실에서 드라마를 보면서, 영화관에 앉아서 문학이 주는 힐링의 세례를 이미 받고 있지 않는가?

대동문화 75호 [2013 3.4월호]

조은상 문학치료사, 문학박사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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