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디~!” 아이들이 나를 부른다. 쿵탕퉁탕 달려와 나에게 포옥 안긴다. 나는 세상의 달콤함을 경험하고 이를 마음껏 누린다. 나에게 아이들과의 만남은 마치 나의 하루하루를 싱그럽고 풍요롭게 해주는 필수적인 에너지와도 같다. 피요르 도스토예프스키(Fyodor Dostoyevsky)가 말한 것처럼 “내 영혼이 치유되는 것(The soul is healed by being with children)”을 느낀다.

피울 공원에서 진행한 연극 놀이에서 신나게 물총 놀이

아이들의 무한한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존재의 자연스러움, 현재성 등을 볼 때마다 내 존재와 세상을 다시 돌아보게 되고, 또 그 안에서 ‘아이의 나’를 마구 꺼내어 보일 수 있음에 마냥 신이 난다.

지난 2011년, 나는 정형화된 형식에서 벗어난 실험적이고 세상 어느 곳이든 무대가 될 수 있는 현장성 있는 공연, 참여와 만남이 있는 공연을 창작해보고자 ‘어린이공연 연구 집단 앙꼬’라는 작은 집단을 구성하여 창작 공연과 함께 연극놀이 수업을 통해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반딧불이’에서 이름을 딴 반디를 별명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나를 소개할 때마다 아이들은 ‘그럼 불은 어디에 있어?’, ‘똥꼬에서 빛이 나?’하며 놀리곤 한다. 아이들에게 나는 한혜민 선생님이 아닌 반디로서 우리는 순식간에 친구가 된다.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고상한 핑계를 대다

공연과 연극 놀이를 통해 아이들을 만나면 매 순간이 놀라움으로 가득 차는 것을 경험한다. 아이들의 상상력의 세계는 늘 나의 예상을 벗어난다. 공연을 할 때나, 수업 중 극놀이를 할 때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빛 속엔 밤하늘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운 별이 숨겨져 있다. 그런 별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우리도 아이의 마음을 회복 할 수 있다면 참 행복할 텐데….’ 하고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별들과 함께 여행하며 내 스스로가 그야말로 치유되는 것을 느낀다.

“반디, 매일 오면 안 돼?”

그 별들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알아보고 존중해주는 어른을 만나느냐, 그 별조차 발견하지 못하는 어른을 만나느냐에 따라 성장의 방향이 확연히 달라진다.

지난 가을, 나는 구리시에 위치한 한 초등학교에서 일주일에 한 번씩 2학년 아이들을 만나 연극놀이를 진행하고 작은 발표회까지 갖는 놀라운 시간을 경험했다. 학급별 담임선생님이 아이들과 소통하는 방식에 따라 극적 활동에 반응하는 방식이 조금씩 다름을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이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며 소통하는 학급 아이들은 서로 배려하고 존중해주며 어떤 활동을 하든지 협동이 잘 되었는데, 선생님이 다그침으로만 소통하는 학급 아이들은 놀이를 할 때 특히 좋아하는 반면, 규칙이 비교적 잘 지켜지지 않았고 다툼이 잦았다.

어느 날 한 담임선생님이 수업에 참여하는 한 남자 아이에 대해 이야기했다. “와, 저는 정말 놀랐어요. 평소에는 정말 말썽쟁이인데 연극 수업 때는 얼마나 재미있게 참여하고 선생님 말씀도 잘 듣던지!”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수업 때 결코 나는 그 아이를 ‘말썽을 일으키는 아이’로 바라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모든 놀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자기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하는 그야말로 ‘잘 노는’ 아이였다. 기회만 되면 나에게 다가와 포옥 안기고 수업이 끝나면 어김없이 나에게 찾아와 “반디, 그런데 있잖아요. 오늘 정말 재미있었어요! 다음에 또 해요.” 하는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내가 아는 그 아이와 담임선생님이 바라보는 그 아이는 왜 그렇게도 달랐던 걸까?

인창초등학교 연극수업 중 아이들과 반디가 서로의 별명을 익히기 위한 놀이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다그치기 바쁜 엄마, 정리하기 바쁜 선생님

초등학교에서 수업을 하면서 다시 한 번 느낀 점은 아이들은 정말 놀고 싶어 하고 마음껏 움직이고 싶어 한다는 점이었다. 요즘 아이들에게 놀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에는 아마 모두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그보다 더한 문제는 그 놀 수 있는 짧은 시간조차 우리 어른들이 제대로 놀지 못하도록 한다는 점이다. 학교에서 진행하는 예술교육 수업에는 보통 담임선생님이 함께하는데 주로 담임선생님의 역할은 소리가 다른 아이들보다 비교적 크거나, 움직임이 큰 아이들을 ‘수업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혼내는 것이다.

우리 어른들은 무언가를 할 때 꼭 정리하려는 습관이 있다. 무언가 조용하게 정리되어 있어야지만 내 마음이 편하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과연 배움은 일방적으로 누군가가 가르치고 또 수용하는 누군가는 조용히 앉아있어야지만 제대로 이루어지는 걸까? 그럼, 소란에서 오는 배움은 없을까? 특히 아이들을 대상으로 할 때에는 어떤 배움이 더 필요한 걸까 스스로 많은 고민을 해본다. 아이들은 몸을 움직이고 제 목소리를 낼 때, 우리 대부분의 어른들이 잃어버리고 만 모험의 세계로 가는 비밀의 입구를 찾을 수 있는 것 아닐까?

겨울 특강으로 동네 주민센터에서 ‘꿈꾸는 기차’라는 연극놀이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 한번은 아이들의 어머니도 참관할 수 있도록 하였는데 이내 나는 그것이 실수였음을 깨달았다. 커다란 종이에 꿈의 나라를 자유롭게 그리는 활동에서 어머니들이 끊임없이 아이들에게 어떤 ‘정형화된’ 생각들을 주입시키고 있었다. 만약 한 아이가 잘 그리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으면 “왜 안 그리니? 이걸 그려봐”하는 식이었고, 아이가 무언가를 그렸을 때 ‘그 주변엔 무엇이 있을까?’는 식으로 그 생각을 격려하고 확장시켜 주는 것이 아니라 “또 딴 거 그려봐” 하면서 강요했다.

또 다른 예로,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 중 특히 움직이는 것을 좋아하고 다소 공격적인 성향을 가졌던 남자아이가 있었는데 나는 아이가 무슨 행동을 할 때마다 아이를 다그치기만 하는 어머니의 반응이 ‘유별나다’고 느꼈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나에게 오시더니 “선생님 죄송해요. 우리 애가 조금 ‘유별’나서요...” 하시는 것이었다. 그 어머니 말씀으론 아이에게 주의결핍성 장애가 있는데 오늘부터 약을 끊어서 오늘 특히 더 심하다는 것. 내 눈에 보이기로는 그 아이는 충분히 재미를 느끼며 체험하고 있는데 오히려 어머니의 괜한 다그침으로 인해 어머니의 ‘예상’처럼 엇나가게 행동하는 것만 같아 보였다. 우리 어른들은 나의 가치관과 주관에 따라 상대방의 행동을 판단해버리고 마는 실수를 너무나도 자주 저지르고 만다.

어린이공연 연구집단 앙꼬 창작 공연 ‘종이학’ 중 관객 체험 장면

예술교육 과연 어디로 가야할까?

사회적 문제가 증가함에 따라 예술교육과 치유의 중요성이 대두되고 있는 요즘이다. 다양한 예술교육 프로그램들이 생성되고 예술교육가들이 차출되고 있다. 나의 소소한 경험으로 보았을 때, 치유란 사실 자신 안에 일어나는 것이다. 아무리 경험과 지식이 많은 전문가가 아이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고 변화를 일으켜보려 노력해도 아이 스스로의 경험과 느낌이 존재하지 않으면 이는 불가능하다. 결국 자신 안에서 스스로 무언가 일어나야지만 치유와 변화가 가능하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순간 아이의 마음에 실재하는 그 무엇. 아이가 경험하는 자신만의 독특한 느낌과 충동. 그것을 어른인 우리들은 판단이 아닌 포용으로, 숨김이 아닌 솔직함으로 수용해주고, 격려해주고, 지켜봐주면 되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바로 이러한 효과를 위해서는 아이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른들은 사실 재미없어도 자신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인지하면 억지로라도 수용하려는 의지를 보인다. 하지만 어린 아이들의 경우라면? 부모님이 아무리 등을 떠밀어도 결국 아이 스스로 ‘재미’를 경험하지 않으면 아이 내면에 무엇이 생겨나기 어렵다. 결국 예술 교육가는 아이들과 소통하고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자질과 더불어 재미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마음껏 놀 수 있는 장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고, 아이의 부모님은 그 아이들의 예술교육 활동으로 인한 경험과 느낌을 존중하고 이를 같이 나누며 확장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함께해야지만 진정한 치유가 가능할 것이다.

‘종이학’ 공연 장면

치유란 반딧불이와 밤하늘처럼 상호적인 것

나는 아이들을 만나며 내 삶의 활력을 충전시키곤 한다. 아이들 내면의 무수히 빛나는 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 영혼 자체가 치유됨을 느낀다. 아이들과 직접적인 만남을 갖는 내가 치유되었을 때, 그리고 그러한 나를 아이들이 만났을 때야 말로 진솔한 치유가 가능해진다. 즉, 치유란 누군가가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해주는 것이 아니라 상호적으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어느 유명한 교육가가 아이들을 만나서 아무리 기가 막힌 프로그램을 기똥차게 진행한다 할지라도 아이들로부터 자신이 감동받지 않고 자신의 영혼이 이에 반응하지 않는다면, 과연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무언가 꿈틀꿈틀 할 수 있을까? 치유는 진솔해야 한다. 진솔한 치유를 위한 예술, 진정한 삶을 위한 예술이 더 널리 널리 퍼지기를, 또 이 반딧불이도 그 아름다운 여행에 지금처럼 늘 함께하기를 기대해본다.

대동문화 75호 [2013 3.4월호]

한혜민 어린이공연 창작가  webmaster@chkorea.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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